산책

토요일에 집에 혼자 있던 게 너무 오랜만이라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하루를 보냈다.
4년 만이라도 되는 걸까.

주중에 미처 하지 못했던 업무를 마저 처리하고,
책을 보고,
노래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고.

그러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바람 좀 쐴 겸,
타이레놀도 사 올 겸 밖에 나갔다.

산책 역시 너무 오랜만이라-
과도할 정도로 예민해진 마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앞으론 이런 산책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묵직한 psp보다 가볍고 장시간 재생 가능한 mp3를 새로 사야 하지 않을까 고민.


약속 아닌 약속을 깰 수밖에 없게 만든 준준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그냥 조금 야속했던 것뿐이었는데.
터벅터벅 느리게 걷다 보니
그보다 더 야속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금요일 밤, 아니 토요일 새벽.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는데.
아주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불과 1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들키지 않으려 소리를 꾹꾹 참아 눌렀음에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했다고 하면
내가 나쁜 거겠지만
속상했던 게 사실.


*

내가 바라던 것은
내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기대어 울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사람.
그만큼 내게도 안겨 올 수 있는 따뜻한 사람.
그렇게 따뜻한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다는 걸 알아 버린 이상.
함께 있으면서도 숨겨야 하는 게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나도 모르게 판단한 이상.
그는 더 이상 내가 바라던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

걷다 보니 또 왈칵왈칵 울음이 차올랐다.

뜨거운 커피를 이를 악물고 빨아들였더니
입천장엔 물집이 생겼고
그걸 또 막무가내로 혀로 쓸어댔더니
입 안에 피 맛이 났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걷고 또 걸었다.


***

누군가에게 강하게 기대고, 집착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글을 보았다.
그러나 굳이 그런 것과 연관시키고 싶진 않았다.

다만 무엇 때문이건-
이 집착의 고리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그에게도
짐과 상처가 된다는 걸 알기에.
끊어내 버려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

완벽하게 내 것인 사람-
아무리 망가뜨려도, 짓밟아도 끝까지 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을
찾아왔다.
그것이 병신 같은 마음에 기인한 거라고 해도.
그런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 그 누구도.
타인을 위해 온 마음을 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거절과 상처에도 고개를 들어
사랑스러운 눈빛을 할 수는 없는 거란 걸 또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던 것은 그냥 나의 말도 안 되는 소망이고 바람이었던 것.

그러니까 과거에 내가 만나던 사람도,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도
내 오랜 소망을 이뤄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러니까 그에게는-
나 이외에 '자유'라는 이름의 시간이 필요한 것.

하지만 나는 '내 것'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것에는
자유를 줄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선택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


*****

최근까지 준준과 결혼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그 틀을 씌우는 게 좋지 않을 듯싶다.

갑갑해 할 그와
얼토당토않은 감정 소모로 지쳐 버릴 나.


******

변하고 변하지 않고보다 더 중요한 것.


*******

어둑어둑한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조금의 겁도 나지 않았다.

칼을 들고 또다시 위협한다고 해도
이제는 더는 신을 부르지 않을 것 같았고,
누군가 도와주길 애타게 바라지 않을 것 같았다.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가 되어 있다 해도,
하지 못한 말에 아쉬움은 남아도,
생에 미련은 남지 않을 것처럼.


*********

누구든 '나' 자신이 중요하다.

아무리 타인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화가 났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순간에는
내가 제일 중요해져 버린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정작 그 고통이 자신에게 오면
그 고통에서 헤어나기에 바쁜 게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딱.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만큼만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

이젠.
그 누가 떠나겠다고 해도
붙잡지 않을 것 같다.


*********

혼자 있는 게
이렇게 어색해졌을 줄은 몰랐는데.

함께한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구나.




by 스이 | 2009/09/27 01:33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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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9/27 19: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스이 at 2009/10/01 21:20
꺅!
타로는 대신 봐줄 수도 있는 건가 봐요!
좀 더 자세한 타로 좀 봐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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